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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척(안보윤) - 우리는 누군가가, 무엇인가가 되려고 한다사과씨책방 2013. 6. 4. 09:30
"어떤 이는 운이 나빠 살인자의 가족이 된다.
어떤 이는 더욱 운이 나빠 피살자의 가족이 된다.
그런데 어떤 이는, 살인자의 가족인 동시에 피살자의 가족이 되기도 한다.
살면서 호의를 가질 수 있는 모든 것을 잃고,
불투명하고 더럽고 역겨운 모든 것을 얻는다......"(p20)정말 몰랐던 걸까? 아니면 알면서도 모른 척 한 것일까?
책을 끝까지 읽으면서도 모르겠다. 주인공 '인호'가 과연 알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인걸까?
아버지의 죽음으로 P시의 원미아파트로 이사를 가고 그곳에서 알게된 사람들과 이모. 점점 변해가는 '인호'의 형 '인근'. '인호'가 짝사랑했던 '문정'. 모두가 알면서 '인호'만 몰랐던지 '인호'도 알면서 모른 척한건지.
살인사건이 벌어진 시점으로 시작하는 《모르는 척》은 가해자의 가족이자 피해자의 가족이 되어버린 '인호'와 형 '인근'의 과거 회상으로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들이 서로 한 지붕 아래에 살아가면서 변화되는 삶을 작가 '안보윤'은 담담하게 그려낸다.
게다가 '안보윤'작가만의 문체로 토악질을 해대고 싶은 '인호'네 가족의 삶을 아름답게 혹은 독특하게 써내려간다. 어찌보면 '인호'가 모르는 척하는게 아니라 작가 '안보윤' 스스로가 모르는 척하고 써내려가는 듯하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그리고 그 모르는 척이 결국은 정말 몰라버리는. 기억과 인지와 모든 감각이 무감각해지고 인식조차 할 수 없는. 작가와 '인호'는 그런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이어나간다.
글쎄. 그렇게 살아가는 이들이 요즘에 '인호'와 '안보윤'작가 뿐이겠냐마는. 그리 달갑진 않다. 읽는 내내 나는 아는데 왜 너는 모르냐고 따지고 싶다. '문정' 또한 이해하지 못했을테고.
'안보윤'작가의 소설은 처음 읽어봤는데, 괜찮다. 《모르는 척》의 느낌은 드럽지만 그럼에도 좋다. '시게마츠 기요시'의 《십자가》도 좋고, 《모르는 척》 이 책도 좋다. 둘다 첫 느낌은 최악이었는데, 읽는 과정이 재미있다.
글쎄 그러고보면 나도 변태기질이 있는건지 왜 이런 기분 나쁜 책을 재미있다고 하는건지. 그만큼 작가의 능력이 뛰어나다는 말이겠지만.너와 네 엄마는 분명히 마귀야 (p233)
마귀는 아닌 것 같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혹은 그냥 모든 감각을 봉쇄해버리고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바라보고 생각하고 싶은 것만 생각하는 우리이고 인간이기에. 지극히 평범한 인간일 뿐이다.
아...아 어쩌면 평범한 인간이 마귀일지도. 지금도 눈과 귀를 덮고 있으니.'사과씨책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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